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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국보/보물)

 조선 초기의 고승 함허당(涵虛堂) 기화(己和, 1376-1433)가 《금강경(金剛經)》에 대한 다섯 가지 해, 즉 당나라 종밀(宗密)의 찬요(纂要), 양(梁)나라 부대사(傅大士)의 찬(贊), 당나라 육조(六祖) 혜능(慧能)의 구결(口訣), 송나라 야부(冶父)의 송(頌), 송나라 종경(宗鏡)의 제강(提綱)에서 중요한 부분을 모아 풀이한 책인 《금강경오가해설의(金剛經五家解說誼)》에서 선종적(禪宗的)인 시각에서 설명한 야부의 송, 종경의 제강 그리고 이에 대한 함허당의 설의(說誼)를 뽑아 한글로 구결을 달고 번역한 책이다. 모두 5권 5책의 활자본이며 권수제는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으로 되어 있으나 판심제에 따라 ‘금강경삼가해(金剛經三家解)’라 부르고 있다. 권1의 앞에는 함허당이 쓴 <금강반야바라밀경서(金剛般若波羅蜜經序)>(涵序, 13장)와 종경이 쓴 <예장사문종경제송강요서(豫章沙門宗鏡提頌綱要序)>(宗序, 5장)가 있고, 권5의 말미에는 함허당의 <결의(決疑)>(14장)와 한계희(韓繼禧), 강희맹(姜希孟)의 발문이 붙어 있다. 한계희와 강희맹의 발문에 간행의 경위가 밝혀져 있다. 1446년(세종 28) 소헌왕후(昭憲王后)가 돌아가자 세종이 야부의 송, 종경의 제강을 구하여 번역을 계획할 즈음, 1448년 함허당의 《야부종경화설의(冶父宗鏡話說誼)》를 얻어 크게 기뻐하며 《증도가남명천계송(證道歌南明泉繼頌)》과 함께 《석보상절》의 끝에 편입시키고자 세자와 수양대군에게 번역하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번역의 초고는 세종대에 이루어졌으나 교정을 보기 전에 1450년 세종이 붕어(崩御)하여 간행이 미루어지게 되었다.




 세조대에 많은 불경언해서가 간행되었으나 《금강경삼가해》와 《증도가남명천계송》만은 교정을 완결하지 못하여 끝내 간행되지 못하였다. 이에 세조비 자성대비(慈聖大妃)가 세종의 유업을 받들어 이 두 책의 번역을 마치고 교정하여, 1482년(성종 13) 내수사(內需司)에서 간행토록 하였다. 책의 체재는 우선 구마라습(鳩摩羅什) 번역의 금강경 본문을 적당한 단락으로 나누어 싣고, 야부의 송과 종경의 제강은 한 글자 내려서, 기화의 설의는 한 글자 더 내려서 싣고 있다. 경 본문은 한글로 구결만 달려 있고 언해는 안 되어 있는데, 야부의 송, 종경의 제강, 기화의 설의는 구결도 달려 있고 번역도 되어 있다. 금강경 본문은 대자(大字)인 정축자(丁丑字)로 되어 있고, 야부의 송, 종경의 제강, 기화의 설의는 을해자(乙亥字) 중자(中字)로 되어 있으며, 한글 구결과 번역 부분은 을해자 소자(小字)로 되어 있다. 경 본문의 구결은 《금강경언해》의 구결과 대체로 일치하나 구절을 나누는 데 차이를 보이는 것이 극소수 있다. 이 책의 경 본문에 사용된 정축자는 그 인본(印本)이 많지 않다. 1457년(세조 3) 9월 의경세자(懿敬世子)가 젊은 나이로 죽자 세조는 그 동궁의 명복을 빌기 위해 여러 불경을 대대적으로 인출, 필사하는 한편, 동궁이 생전에 쓴 금강경은 장책하게 하고 미처 다 쓰지 못한 법화경 권1은 이어 써서 바치게 하였다. 또 기화의 풀이가 곁들여진 《증도가》와 《금강경오가해설의》를 금속활자로 간행하게 하였다. 그래서 《금강경오가해설의》의 경우, 《금강경》 본문은 정축자, 주석의 중자와 소자는 갑인자(甲寅字)로 인출되었다. 이 때 정축자의 주조를 위한 글자본은 세조가 직접 쓴 것이다. 과거에는 정축자를 을해자 대자로 오인하기도 했으나, 후자가 가로로 퍼지고 자획의 둥근 부분이 짙게 나타나는 반면에 전자는 세로로 길쭉하고 서법도 더 바르고 분명하다. 그리고 주조가 정교하여 다른 활자의 대자(大字)보다 필력이 예리하게 나타나는 편이다. 정축자는 현재 남아 있는 문헌으로 볼 때 《금강경오가해설의》와 《금강경삼가해》의 《금강경》본문에만 쓰였기 때문에 ‘금강경대자(金剛經大字)’라 일컫기도 한다.



 《금강경삼가해》는 정축자와 을해자를 함께 썼기 때문에 행자수에 출입이 있다. 경 본문은 1행이 15자이나, 야부의 송, 종경의 제강, 함허당의 설의 등은 1행이 21자이다. 하나의 반엽이 금강경 본문만으로 되어 있는 경우에는 반엽이 9행이나, 하나의 반엽에 금강경 본문이 없거나 1행 내지 2행 있을 때에는 반엽이 대개 11행으로 되어 있고, 하나의 반엽에 금강경 본문이 3행 내지 7행 있을 때에는 반엽이 대개 10행으로 되어 있다. 이 책에 보이는 국어학적 특징은 다음과 같다. 각자병서가 동국정운식 한자음 이외에는 ‘ㅆ’을 포함하여 일체 사용되지 않으며, 어간말의 ㅿ은 유성음 앞에서 ㅅ과 혼기를 보여준다[?업슨(1: 5a), ?업슨(2: 19a)]. 유성자음으로 끝나는 체언 뒤에 조사가 결합될 때 분철 표기가 꽤 많이 나타나고 일부 무성자음으로 끝난 체언의 경우도 분철 표기된 예들이 보인다[조각이라(涵序 3a), ?은(2: 29b), 닐굽?(1: 7a) 등]. 원순성 동화가 특징적으로 나타나고[외?로(1: 11a), 밧고로셔(3: 32a), 보왐직?며(1: 17b), 견주워(2: 65a), ?초와(3: 52a) 등] 선어말어미 ‘오/우’가 ‘오/우’로 끝나는 용언 어간 뒤에서 융합되거나 생략되지 않고 그대로 나타나기도 한다[마초오미(2: 29b), 나토오려(2: 58b), 모도오?(3: 10a) 등]. ‘칙칙?(涵序 7a), 議論? ?니어니와(1: 6a)’ 등과 같이 오자나 탈자로 보이는 예들도 발견할 수 있다. ‘스? 그르호?(寫之誤)’(涵序 13b)에서 ‘스?’는 이전 시기 동명사형 어미에 조사가 직접 결합한 용법의 잔영으로 볼 수 있어서 의존명사 ‘이’의 용법과 관련하여 다양한 의견이 제시된 어형이다. ‘? 琴 잘 ?? 사?미오’(涵序 12b)의 ‘??’은 회상법 선어말어미 ‘-더-’가 ‘-?-’로 나타난 15세기의 유일례이다. 그리고 ‘?(所以)’(涵序 3b), ‘?니(時)’(1: 15a), ‘수늙(嶺)’(1: 21a), ‘자치다(止)’(1: 25b), ‘?보로’(2: 33a), ‘?와?(蕩子)’(4: 22a), ‘??다’(3: 12b), ‘감?고?(紫)’(1: 23b) 등 다른 문헌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단어들이 많이 보인다. 이 책은 중간된 일이 없고 원간본만 전한다. 서울대 규장각 가람문고에 권2, 3, 4, 5의 4책(보물 772-2호)이, 세종대왕기념사업회에 권1, 5의 2책(보물 772호)이, 보림사에 권1의 1책(보물 772-3호)이, 계명대에 권2의 1책(보물 772-4호)이, 동국대에 권1의 1책(권수와 권말 낙장)이, 성암문고에 권3, 4의 2책이 각각 소장되어 있다. 가람문고의 권2-5는 1961년 한글학회에서 영인된 바 있으며, 1981년 영남대학교 출판부에서 가람문고의 권2-5와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소장의 권1을 합하고 동국대학교 도서관 소장 권1의 <함서(涵序)>를 보충하여 《민족문화자료총서》 제1집으로 간행하였다. 그리고 한글학회에서 1994년 5권 완질을 다시 영인 간행하였다. 이 책은 《남명집언해》와 함께 불경 언해 경험이 축적된 뒤에 간행됐다는 점과 풍부한 어휘를 보여준다는 점, 그리고 15세기 중반의 국어 모습에서 변화를 보이기 시작하는 15세기 후반 국어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갖는 귀중한 자료이다.



(이병기)

①참고문헌 金英培(1975), 金剛經三家解 第1에 대하여: 그 稀貴語를 중심으로, 睡蓮語文論集 3, 부산여대. 김주필(1993), 금강경삼가해, 국어사 자료와 국어학의 연구, 문학과 지성사 金弼圭(1969), 金剛經三家解의 國語學的 考察, 東亞大 碩士學位論文. 李秉岐(1939), 金剛經三家解에 대하여, 東亞日報 2월 14일. 沈載完(1976), 金剛經三家解 卷1의 文獻的 考察, 姜馥樹敎授回甲紀念論文集.
②관련항목: 금강경, 금강경언해, 금강경오가해, 금강경오가해설의, 남명집언해
③키워드: 함허당, 득통, 기화, 간경도감, 불경, 세조, 김수온, 한계희, 노사신 ④원전보기: [보림사 소장 원간본 권1]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소장 권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