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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국보/보물)

 세종의 명으로 수양대군(首陽大君, 뒤의 세조)이 편찬한 석가모니의 일대기와 주요 설법을 담은 책이다. 책이름의 ‘석보’는 석가모니의 전기(傳記)를 의미하고, ‘상절’은 종요로운 내용은 자세히[詳] 쓰고, 종요롭지 않은 내용은 줄여서[節] 쓴다는 뜻이다. 이 책의 원간 연대는 서문의 “正統 12年(1447) 7月 25日 首陽君諱序”의 기록에 따라 1447년(세종 29)으로 추정된다. 편찬의 동기와 목적 등에 대해서는 《월인석보(月印釋譜)》권1 앞에 실려 있는 <석보상절서>와 <어제월인석보서>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 내용에 따르면 1446년(세종 28) 왕비 소헌왕후(昭憲王后)가 돌아가자, 그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세종이 수양대군에게 석보를 만들어 한글로 번역하게 하였는데 수양대군이 신미(信眉), 김수온(金守溫) 등의 도움을 받으면서 남제(南齊)의 승우(僧祐)가 편찬한 《석가보(釋迦譜)》와 당(唐)의 도선(道詵)이 편찬한 《석가씨보(釋迦氏譜)》를 참조하여 새롭게 편찬하여 우리말로 번역하였다 한다. 전편(全篇)은 모두 24권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현전하는 원간본으로는 국립도서관 소장의 권6, 9, 13, 19, 동국대 도서관 소장의 권23, 24, 호암미술관 소장의 권20, 21이 있다. 특히 국립도서관 소장의 4책은 본문과 난상(欄上)에 묵서로 교정까지 되어 있어서, 이 책 간년의 추정에 중요한 근거가 되고 있다. 이들은 모두 구리로 주조된 한자활자[甲寅字]와 한글활자로 인쇄된 활자본이다.



 인쇄에 사용된 한글활자는 한글 창제 이후 최초로 만들어진 것으로, 현대의 고딕체와 모양이 유사하다. 한글의 자형(字形)은 자음자의 획이 직선으로 되고, 방점과 아래아(ㆍ)가 둥근 점(點)으로 되어 한글 창제 당시의 모습을 보인다. 다만 《훈민정음》 해례본에서 점으로 되어 있던 ‘ㅏ,ㅑ,ㅓ,ㅕ’의 가로획과 ‘ㅗ,ㅛ,ㅜ,ㅠ’의 세로획은 직선으로 바뀌었다. 《용비어천가》의 한글 가사가 보여주는 한글 자형과 같다고 하겠다. 이 한글활자는 《석보상절》을 간행하기 위하여 주조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월인천강지곡》과 《사리영응기(舍利靈應記)》에도 이 한글활자가 사용되었다. 《석보상절》은 16세기 이후 부분적으로 중간되었다. 권3(천병식 소장)과 권11(호암미술관 소장)이 전하는데, 이들은 모두 원간본을 복각(覆刻)한 것이어서, 일부 오·탈각을 제외하고는 원간본과 같은 내용을 보여준다. 이 가운데 권11은 국립도서관, 동국대 소장의 원간본과 함께 현재 보물 523호로 지정되어 있다. 책의 내용은 석가족의 연출(緣出)로부터 석가모니의 전세 이야기, 그리고 현세에서의 석가모니의 탄생, 성장, 출가, 성불, 멸도에 이르기까지의 일대기와 석가모니 사후의 경률(經律)의 결집(結集), 불법(佛法)의 유포 등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특히 <아미타경(阿彌陀經)>, <약사경(藥師經)>, <법화경(法華經)>, <지장경(地藏經)> 등 석가모니가 설법한 주요 불경 내용이 석가의 일대기 속에 함께 실려 있어 기존에 중국에서 편찬되었던 《석가보》등과 편찬 방식에서 차이를 보여 준다.



 《석보상절》은 한글로 표기된 최초의 산문 자료이다. 특히 15세기의 다른 언해서들과는 달리 한문 원문이 없고 또한 문체도 자연스러운 점에서 당시의 언어사실을 더 잘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되어 왔다. 표기법에 있어서도 같은 세종대의 문헌인 《용비어천가》와 《월인천강지곡》과는 달리 8종성법 등 음소적 표기법만을 보여 준다. 비록 동명사형 표기에서 ‘ㄹㆆ+단일초성’과 ‘ㄹ+각자병서’의 두 가지 방식의 혼용(디? 사?, 디닐 싸?), ㅅ의 표기 위치(닷가, 다?; 부?긔, 부텨?), ?의 표기 위치(야?, ??) 등 부분적인 표기법의 혼란은 있으나 이는 정음창제 초기에 아직 확정되지 않은 몇 가지 표기법에 한정되는 문제이다. 또한 이 표기법의 혼란은 전체 24권이라는 분량의 방대함에서도 그 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이 책의 표기법은 그 이후의 한글 표기법의 전범(典範)이 된다. 한자음 부기(附記)의 방식도 그러하다. 15세기 한글 문헌들은 각 한자별로 그 아래에 동국정운식 한자음을 부기하는데 그러한 방식의 최초 모습을 이 책은 보여 주는 것이다. 다만 이 책에 부기된 한자음 가운데에는 《동국정운(東國正韻)》의 한자음과 일치하지 않는 것도 소수 존재한다. “鬼·?, 勞롱, 部:뿡, 最:죙, 化:황, ···”(cf. 동국정운음, :?, ?, :뽕/:?, ·죙, ·황,···). 이는 두 문헌의 편찬시기의 선후와 관련된 문제로 보인다. 한자어의 표기에 있어서도 비슷한 시기의 다른 문헌들에 비해 더 많은 한글 표기를 보여 주는데(위두, 미혹, ?류, 위?-, 뎐디?-, ···) 이는 이 문헌의 편찬자가 상정하고 있던 독자층의 문제와 관련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국립도서관 소장의 원간본 권6, 9, 13, 19는 <한글> 111~125호(1955~1959)에 영인 수록되고 1961년 한글학회에서 단행본으로 간행된 이후, 이를 저본으로 한 대제각 재영인본이 널리 유포되어 이용되었으나, 이들 영인본에서는 원전의 교정이 삭제되어 있다. 1991년 세종대왕 기념사업회에서 원전의 복사본을 다시 영인한 바 있다. 동국대 소장의 권23, 24는 1969년 문교원에서 원척(原尺)으로 영인된 이후, 이를 저본으로 한 김영배(1972)와 대제각 재영인본이 널리 이용되어 왔다. 복각본 권11은 1959년 대구 어문학회에서 영인되고, 1991년 세종대왕기념사업회에서 재영인되었다. 복각본 권3은 1985년 아세아문화사에서 영인되었다.



(이호권)

① 참고문헌 김영배(1972), 석보상절 23·24 주해, 일조각. 안병희(1974), 석보상절의 교정에 대하여, 국어학 2. 이동림(1959), 주해 석보상절, 동국대학교 출판부. 이호권(2001), 석보상절의 서지와 언어, 태학사.
② 관련항목: 월인석보, 월인천강지곡, 용비어천가, 사리영응기
③ 키워드: 수양대군, 석보, 석가보, 석가씨보, 교정, 한자음, 한글활자
④ 원전보기: [국립도서관소장 권6, 권9, 권13, 권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