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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국보/보물)

 불교의 근본 경전의 하나인 능엄경에 송나라 계환(戒環)이 해설을 붙인 《수능엄경요해(首楞嚴經要解)》(전 10권, 1127)에 대해 세조(世祖)가 한글로 구결을 달고 한계희(韓繼禧), 김수온(金守溫) 등이 혜각존자(慧覺尊者) 신미(信眉)의 도움을 받아 번역한 책. 원명은 “대불정여래밀인수증료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언해”이나 줄여서 “능엄경언해”라고 부른다. 세조, 신미, 김수온 등이 쓴 발문에 의하면 1449년(세종 31) 세종의 명령으로 수양대군이 번역에 착수하였으나 끝내지 못하고 미루어지다가, 1461년(세조 7) 5월 석가의 분신사리(分身舍利) 100여 매가 나타나는 상서가 있었고 효령대군(孝寧大君)이 이 책과 《영가집(永嘉集)》의 번역을 세조에게 청하자 두어 달 만에 번역을 마치고 이 해 10월 교서관(校書館)에서 을해자(乙亥字)로 400부를 간행하였다. 그런데 서둘러 간행된 이 활자본에는 잘못된 것이 많아서, 이를 수정하여 1462년 간경도감(刊經都監)에서 목판본으로 다시 간행하였다. 이 목판본 권1의 권수(卷首)에는 간경도감 도제조(都提調)인 계양군(桂陽君) 증(?)의 전(箋)(1462년 8월 21일자)과 조조관(雕造官)의 제명(題名)이 있다. 활자본에는 이 전문(箋文)과 제명이 없으므로, 활자본의 간행은 간경도감과 무관하게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남아 있는 활자본들은 주묵(朱墨)으로 교정하거나 인쇄한 쪽지를 덧붙여서 목판본과 같은 내용으로 수정되어 있다. 교정 대상은 조판과 인출 과정에서의 단순한 오자(誤字)가 약간 있으나 번역 과정에서의 잘못이 대부분이다. 현재 남아 있는 책들에서 교정의 양상이 동일하게 나타나는 것으로 볼 때, 배포되었던 책들을 가능한 한 수거하여 교서관이나 간경도감에서 일괄적으로 교정한 뒤 다시 나누어준 듯하다.



 언해본에서는 상당한 양의 음석(音釋)이 추가되었다. 음석은 본문 중에 나오는 난해한 한자를 가려서 각권 권말에 그 독음과 새김을 보인 것인데, 계환의 《능엄경요해(楞嚴經要解)》뿐 아니라 송나라 함휘(咸輝)의 《능엄경의해(楞嚴經義海)》, 원나라 유칙(惟則)의 《능엄경회해(楞嚴經會解)》, 송나라 사탄(思坦)의 《능엄경집주(楞嚴經集註)》의 네 주석서에 있는 음석을 각각 요해(要解), 의해(義海), 회해(會解), 집주(集註)라는 약칭 아래에 모아 두었다. 그런데 목판본 권10의 권말에는 활자본에는 없는 음석이 더 있다. 권10의 음석 바로 뒤에 출전을 명시하지 않고 ‘第一卷’, ‘第二卷’과 같이 권차만 밝히고서 권1-10의 음석을 약 3장에 걸쳐 싣고 있다.



 활자본은 현재 각 권별로 여러 곳에 소장되어 있다, 현존본과 그 소장처는 다음과 같다. 권1: 성암문고, 김병구 권2: 서울대 규장각, 김병구 권3: 동국대 도서관, 김병구 권4: 서울역사박물관, 김병구 권5: 서울대 가람문고, 일본 천리대 도서관, 김병구 권6: 일본 천리대 도서관, 단양 구인사 권7: 동국대 도서관,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서울역사박물관, 김병구 권8: 동국대 도서관,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서울역사박물관, 김병구 권9: 고 김형규, 세종대왕기념사업회 권10: 세종대왕기념사업회, 김병구 이들은 대부분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활자본 능엄경언해의 인쇄에 사용된 을해자는 1455년(세조 1) 강희안(姜希顔)의 글씨를 글자본으로 하여 만든 동활자이다. 그런데 한글 활자는 이 때에 함께 주조되었다는 기록이 없으며 《아미타경언해(阿彌陀經諺解)》와 《능엄경언해》에서 비로소 사용된 점 등을 고려할 때 1461년에 주조된 것으로 보인다.



 을해자 한자 활자에는 대자, 중자, 소자가 있는데 능엄경언해에서 대자는 경 본문, 중자는 계환의 해, 소자는 쌍행으로 된 언해문에 사용되었다. 한글 활자는 구결이나 언해문에서 모두 소자만 사용되었다. 아미타경언해에는 한글 활자로 소자 외에 중자도 사용되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언해의 한글 활자와 한자음 표시의 한글 활자가 똑같이 소자라는 점이다. 《석보상절》에서 갑인자(甲寅字)와 함께 사용된 한글 활자의 경우 본문은 대자이며 주석문의 활자와 한자음 표시의 활자는 이보다 작지만 전자가 후자보다 약간 크다. 목판본 능엄경언해에서는 활자본 능엄경언해처럼 언해의 한글자와 한자음 표시의 한글자가 크기가 같으나, 그 이후의 간경도감의 다른 불경언해들에서는 한자음 표시의 한글자가 언해의 한글자보다 좀 작으며 행의 오른쪽에 치우쳐 있다. 목판본은 1462년의 초인(初印) 이후에 적어도 두 번의 인출이 있었다. 하나는 1472년(성종 3)의 인출로서 《원각경언해(圓覺經諺解)》,《몽산법어(蒙山法語)》 등에 실린 그 때의 김수온의 발문에서 ‘法華經六十件 楞嚴經六十件 圓覺經二十件’과 같이 인출 서명(書名)과 부수(部數)가 밝혀져 있다. 또 하나는 1495년의 인출로서 《금강경언해(金剛經諺解)》, 《심경언해(心經諺解)》 등의 학조(學祖)의 발문에 ‘飜譯法華經楞嚴經各五十件’이라 되어 있다. 그런데 1472년과 1495년에 인출된 《능엄경언해》는 인출 당시의 발문을 가진 것이 전하지 않으며 전하더라도(권1~9는 그 가능성이 있다) 다른 언해본으로 미루어 볼 때 인면(印面)과 지질도 훌륭하여 초인본과 구별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다만 불교 관련 용어의 한자 독음 표시에 있어 약간의 교정이 있었다. 후대의 인출본들은 매목(埋木) 또는 인쇄한 글자를 오려붙이는 식으로 한자음 표기가 교정되어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阿難’의 ‘阿’자가 ‘?’에서 ‘?’로, ‘般若’의 ‘般’자가 ‘반’에서 ‘?’로 고쳐져 있다. 목판본 《능엄경언해》 중 동국대 소장의 완질이 국가에서 국보 21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서울대 규장각과 아단문고 소장의 책은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간경도감에서 만들어진 《능엄경언해》의 책판은 15세기말까지는 어떤 관아나 사찰에 보관되다가 다른 책판들과 함께 곧 없어진 듯하다. 16세기 이후의 인출에 대한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16세기 들어 지방의 사찰에서 그 복각본이 간행되었다. 이 복각본들은 현재 여러 곳에 영본(零本)으로 남아 있는데, 간기를 볼 수 없어서 언제 어디서 복각한 것인지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인면과 지질 등으로 보아 16세기의 사찰 복각본으로 추정된다. 이 목판본 능엄경언해는 간경도감에서 간행된 최초의 불경 언해이며 그 뒤에 간경도감에서 나온 다른 불경 언해들에 대해 전범(典範)의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매우 의의가 크다. 활자본 능엄경언해는 일본 천리대 소장의 권5,6이 <조선학보> 106호(1983)에,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소장의 권7~10이 <겨레문화> 1~5(1987~1991)에 각각 축쇄 영인된 바 있고, 1997년 문화재관리국에서 권1(성암문고)과 권10(세종대왕기념사업회)을 원척 영인하였다. 김병구 소장의 권1~5는 1998년 경북대 출판부에서 영인본이 간행되었다. 목판본의 영인은 1959년 동국대학교에서 축쇄 영인한 이후 1977년 대제각의 재영인본이 널리 유포되었고, 서울대 소장본을 저본으로 한 영인본(계명문화사, 1987)도 많이 이용되고 있다.



(박진호)

① 참고문헌 서울大學校 奎章閣(2001), 奎章閣 所藏 語文學 資料: 語學篇 解說, 서울大學校 奎章閣. 안병희(1992), 國語史 資料 硏究, 文學과知性社. 안병희(1997), 活字本 楞嚴經諺解 解題, 문화재관리국.
② 관련항목: 아미타경언해, 원각경언해, 몽산법어, 금강경언해, 심경언해
③ 키워드: 세조, 을해자, 간경도감, 능엄경요해, 교서관,교정, 신미
④ 원전보기: [김병구 소장 원간 활자본 권1, 권2, 권4, 권8, 권10]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소장 원간 활자본 권7,8, 권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