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너뛰기링크

메뉴 열기, 닫기

전통문화공감

검색어 입력
  • Print

본문시작

장인

 자수(刺繡)는 여러 색실로 바탕천에 무늬를 수놓아 나타내는 조형활동이다. 자수의 유래는 기록상으로는 삼국시대부터 확인되며 고려시대에는 일반백성의 의복에까지 자수장식을 할 정도로 성행하였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궁수(宮繡: 궁중에서 수방나인에 의해 정교하게 만들어진 수)와 민수(民繡: 민간에서 일반적으로 만들어진 수)로 구분되어 각각 뚜렷한 특징을 보이면서 발전하였다. 우리나라의 자수는 삼국시대를 즈음하여 이미 육조(六朝)시대에 중국에서 발생한 수불(繡佛)과 수장(繡帳)·수번(繡幡)·수가사(繡袈裟)와 같은 불교자수의 영향을 받아 일찍부터 발달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신라 진덕여왕 4년(650)에 손수 비단을 짜서 여기에 오언(五言) 태평송(太平頌)을 수놓아 당나라 고종에게 보냈다는 기록이 보인다. 그리고 [삼국사기], [잡지(雜誌)]에 보면 옷은 물론 가마나 말안장, 일상용품에 이르기까지 수가 장식되었고, 불교수도 상당히 성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 밖의 일본의 고대 기록을 통해 볼 때 일찍이 우리나라에서 일본에 자수를 전하여 큰 영향을 끼쳤던 것을 알 수 있다. [일본서기(日本書記)]에는 340년경에 백제의 왕이 옷을 짓는 여공(女工) 진모진(眞毛津)을 일본으로 보냈는데 이 진모진이 일본 자수의 시조가 되었다는 기록도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자수의 흔적은 1973년에 발굴된 경주 천마총 출토 유물 중 옷자락에 금사로 수놓은 흔적이 발견된 바 있다. 그 후 고려 말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으로 [자수사계분경도(刺繡四季盆景圖)] 및 사찰에서 전하는 몇몇 작품을 찾아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자수는 크게 생활자수와 불교자수로 대별된다. 생활자수는 일상용품에 수놓아 치레하는 것을 말하며 왕실과 귀족 계층의 전용물이 대다수였으며 시대의 변천에 따라 대중화된 이후에도 여성 중심으로 발전되었다. 조선시대 후기 선비 문화의 생활관은 절제와 검소를 규범으로 하였기 때문에 사대부의 옷차림이나 그 밖의 생필품에 자수와 같이 화려하거나 사치하는 것을 기피하였다. 불교 자수는 종교적인 정성과 최선의 공양을 뜻한다. 탱화를 비롯하여 불경 표지, 연(輦)의 수식(垂飾)·인로왕번(引路王幡)·사리장엄구·가사 등이 바로 그러한 뜻을 담고 있다.


 한국의 옛 자수들은 색깔이 강하지 않으며, 세부 묘사에도 얽매이지 않고 필요에 따라 대담한 생략법을 구사하였다. 그것은 자수에만 국한되지 않는 한국 공예미의 일반적인 특성이다. 정교하다 하더라도 결코 근시안적인 시각이 아닌 한 걸음 물러나서 관조할 수 있는 윤곽이요, 부드러운 선으로 평가받는다. 이는 중국 자수나 일본 자수와는 또 다른 한국 자수가 갖는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