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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문화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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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샛골나이는 전남 나주시 다시면 소재지인 동당리 일원에서 직조되고 있는 전래의 고운 무명베를 일컫는 말이다. 샛골은 이곳 동당리 마을을 가리키는 것이고 나이는 길쌈을 뜻하는 말이다. 샛골나이라는 명칭은 무형문화재 지정을 위한 조사 당시 고 석주선 박사가 붙인 이름으로 일반적으로는 셋골 세목이라고 알려져 있다. 고려 말 문익점에 의해 한반도에 전래된 목화씨는 조선 시대에 전국적으로 재배되었으며, 무명은 한국인 의생활의 주재료가 되었다. 무명의 제작 과정은 목화솜을 수확하는 데서 시작한다. 목화솜에서 씨를 빼내고 솜을 부풀려 고치를 말고 물레에 돌려 무명실을 만들어낸다. 자아낸 무명실을 날틀에 걸어 실의 굵기에 따라 날고 그 위에 풀을 먹인 후 베틀에 걸어 짜면 무명 한 필이 완성된다. 무명을 짠다는 것은 매우 고된 작업이다. 목화씨를 빼서 활로 타서 고치를 말아서 물레로 자아서 짤 때가지 적어도 달포가 걸려야 하는데 그 수고에 비해 대가가 너무나 적은 작업이다. 그래서 개화기 이후 무명길쌈은 수입직물과 공장에서 대량으로 생산되는 제품들에 밀려 점차 쇠퇴하게 된다. 특히 해방 이후 질기고 다루기가 좋은 나일론이 나오면서부터 재래식 방법에 의한 길쌈이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으며 1960년대 중반쯤에는 거의 다 사라지게 되었다. 모든 것을 바쳐 ‘춥고 가난한 날’을 감싸는 목화는 이 땅의 어머니들을 닮아 있다. 1960년대 중반 무렵, 마을마다 부녀자들이 가족들과 집안사람들을 위하여 밤을 지새워가며 해야만 했던 무명짜기의 전통은 그 고된 작업의 상징으로 부녀자들의 애환을 가득 담고 있는 베틀과 함께 모두 자취를 감추게 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문화재청(당시 문화재관리국)에서는 사태의 시급함을 파악하고 무명짜기의 재래식 방법에 대하여 1968년에 지정을 위한 조사를 실시하였고 1969년에는 제28호 나주의 샛골나이라고 하는 이름으로 지정하여 나주시 다시면 동당리에 있는 고 김만애 할머니를 기능 보유자로 인정하게 되었다. 당시 역사적으로 유명한 면직물로 샛골 세목 외에도 고양나이, 진주목 등이 있었으나 조사 당시 그 기능을 보유하고 있는 곳은 샛골나이뿐이었다고 한다. 지방에 따라 삼베와 모시를 재래 방법으로 짜기도 하지만 무명을 짜는 곳은 거의 없었던 것이다. 그나마 샛골에서도 베틀이 남아 있는 곳은 김만애 할머니 집뿐이었다고 한다. 1982년 김만애 할머니가 고령으로 작고한 뒤 나주의 샛골나이는 8년간 해지된 상태에서 보유자가 지정되지 않은 채 유보되어 있었다. 1990년에야 보유자 인정을 위한 조사가 다시 실시하게 되었고, 당시 김만애 할머니의 며느리이자 보유자 후보였던 노진남 선생을 새로이 인정하게 되었다. 1990년 조사 당시 이미 재래방법에 의한 무명짜기는 샛골에서도 노진남 선생만이 전승하고 있을 뿐 샛골나이는 나이든 할머니들의 기억에만 남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