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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문화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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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

 염색장이란 천연염료로 옷감에 물들이는 장인을 말한다. 조선시대 궁중에서는 염색을 담당하는 전문적인 장인을 두고 있을 정도로 염색은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한 분야였다. 상고시대 우리나라 염직의 기록으로는 [후한서] 권85 [동이열전]에 화려한 무늬 비단과 자수 놓은 의복을 만들고 금은으로 장식한다는 뜻으로 색깔실을 사용한다는 기록이 있어 염색 기술이 상고시대부터 벌써 들어와 있음을 알 수 있다.


 [삼국사기]에는 고구려 왕은 비단관에 녹의를 입고 금화가 붙은 혁대를 하였으며 대신은 청라관(靑羅冠)이나 비단 장식을 쓰는데 양 옆에 새 깃털을 꽂고 금은으로 장식하였다고 나와 있다. 청라관은 쪽물로 물들인 비단관이고, 왕이 녹의를 입었다고 한 것으로 보아 쪽의 생엽염이나 쪽과 치자나 괴화의 복합염으로 초록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신당서] 동이전 백제조에서는 “왕복은 자색 명주포(袍: 도포)에 청색고(靑色袴: 바지)를 착용하고 여기에 소피대(素皮帶: 염색 안한 가죽혁대)를 매었다.”라고 하였듯이 자색, 청색으로 염색했고, 왕을 비롯한 대신들의 복색은 붉은색 계통이며 이 당시 많이 사용한 색은 자색, 적색, 청색, 황색, 조색, 비색 등이다. 백제시대의 특징은 일반 서민에게 자의(紫衣)와 비색 착용을 금함으로써 치자와 피치자의 구별을 하는 금색법을 남겼다는 점이다. 통일신라 이전의 신라의 공복에 사용되었던 염색은 자, 비, 청, 황, 록, 자, 비, 흑, 적, 청 등으로 직을 표시하는 품계에 따른 색을 사용하였다. 당시 색에 대한 관념이 상당히 발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식물성 염료가 많이 개발되었고 중앙 부서에 도염서(都染署)가 있어 직조된 천에 기량을 다하여 염색 가공을 하였다. 사영 공장과 관령 공장에서 염직물을 생산하였는데 특히 염색을 관장하기 위해 직염국(織染局)에 도염서(都染署)와 상의국(尙衣局)에 장복서(掌服署) 등의 제도가 있어 전문장인인 염료공과 염색공을 두어 염색을 담당케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경북대전 복식금제제도, 경공장에 청염장(靑染匠), 황단장(黃丹匠) 등 염색장이 분업화되어 염색을 색별로 관장하였다. 태종은 국초에 백색을 금지하고, 경천사상으로 인해 쪽염을 많이 했으며 왕복은 자색을 띤 홍색으로 하였고 궁중의 염색 색깔은 오방색, 오간색 등으로 다양한 염색기술을 보였다.


 천연염료 가운데 우리나라에서 문헌에 나타난 염재로 사용한 식물의 종류는 50여종이나 매염제와 염색법에 의해 100여가지의 색채를 낼 수 있음을 기록에서 찾을 수 있다. 천연 염색은 근대화 이후 화학염색의 도입으로 전통의 맥이 끊겼다가 일부 장인들의 노력으로 그 맥을 되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