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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

갓으로 불려지는 흑립(黑笠)은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백의(白衣)와 대비되어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신분을 상징하고 있다. 전통사회의 성인남성의 격은 갓을 갖추어 썼을 때라야 비로소 완성된다. ‘의관을 정제한다’는 말처럼 평소에 성인 남성이 바깥출입을 할 때 의례 도포와 갓을 갖추어 쓰게 마련이었다. 방을 나설 때부터 착용하여 실내에서도 벗지 않았을 뿐더러 돌아와 잠자리에 들기 직전에 비로소 벗는 것이 상례였다. 흰색 도포자락에 짙은 먹빛의 반그늘이 지는 갓이 절제되지만 서로 절묘하게 어우러져 갖춰 쓴 이의 품격을 유감없이 대별할 수 있었다. 갓은 고려시대에 서민들이 즐겨 쓰던 패랭이 (平凉子)에서 유래되어 조선시대에는 한층 양식미를 갖춘 공예품으로 발전하였다. 갓을 제작하는 공정은 크게 세 가지 기능으로 구분한다. 우선 갓 대우(대우는 갓의 모자 부분을 일컫는 순수한 국어로서, 모정아[帽頂兒]라고 부르기도 한다)부분을 말총으로 엮는 총모자장(?帽子匠), 대올을 실낱처럼 떠서 차양부분을 얽어내는 양태장(?太匠), 총모자와 양태를 조립하면서 명주를 입히고 옻칠해 완제품을 만들어내는 입자장(笠子匠)이 그것이다. 이 세 기능은 서로 재료가 다르고 솜씨의 격차가 심하기 때문에 생산지를 달리하거나, 혹은 한 공방에서 분업적인 협동이 순조롭게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총모자장, 양태장, 입자장의 기능을 일괄해 ‘갓일’이라는 명칭으로 묶어 국가에서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한 것이다. 물론, 그 용어가 전래의 것은 아니며 제작소 내지 판매점을 갓방(笠房)이라 부를 뿐, 전 공정을 통괄하는 일의 명칭은 따로 없었던 듯하다. 지금의 갓은 대체로 조선시대 전기에 정형화되고 그 사용이 점차 일반화되어 사류(士類)의 가장 애용하는 바가 되었다. 동국의관(東國衣冠)은 갓과 도포(道袍)를 말하는데 그 양식미는 세계의 어느 의관보다도 우월하다고 하겠다. 근대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직전까지 우리나라의 성인 남자들은 평상시에 도포에 갓을 갖추어야 비로소 문밖출입을 할 수 있었다. 각지의 명산지에서 제작과 판매를 담당하고 시장에서도 판매하였기에 도매상과 소매상이 전국을 누비던 것이 당시의 풍경이었다. 그러나 값이 워낙에 비싸서 낡았다고 하여 쉽게 새것으로 바꿀 엄두가 나지 않는 물건이기도 했다. 따라서 구멍이 나고 헤져도 부분적으로 수리해 쓰는 것이 일반화된 습관이어서 지방에는 곳곳에 수리공이 성업하기도 했다. 그러나 단발령이 내리고 의습이 서구식으로 바뀌고 난 뒤에는 지방의 노인들 말고는 찾는 이가 급격히 줄면서 갓일도 침체일로에 접어들었다. 갓일은 1964년 12월에 중요무형문화재 제4호로 지정되었는데, 문화재보호법이 생기고 가장 먼저 지정한 공예기술 분야로 기록된 것도 이런 위기의식 때문이었다. 김인 선생은 스승인 오송죽 선생의 뒤를 이어 보유자가 되었고, 90세의 고령에 달한 2009년에는 평생을 전업으로 몰입해 왔던 공로를 인정하여 명예보유자의 반열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