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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약장수는 경회(慶會)나 장인데 사람의 간장만 다 녹여낸다 콩 타작 별 타작 다 할지라도 유정(有情)님 반타작 나는 못 하것다 간장의 열독은 다 퍼낼지라도 사람의 간장만 건네지를 마라 황해도 민요 「간장타령」에 나오는 가사이다. 간장은 된장과 함께 한국인이 먹는 대표적인 기초 음식이다. 황해도 지방에서는 먹는 간장과 사람의 장기(臟器)인 간장(肝臟)이 동음이의어라는 점에 착안하여 재미있고 신명나는 「간장타령」이라는 민요를 만들어 불렀다. 개화기 이후 일제 강점기까지 새
  • 『간편조선요리제법(簡便朝鮮料理製法)』은 1934년 삼문사(三文社)에서 간행된 조선요리책으로 저자는 이석만(李奭萬)이다. 책에는 두 가지의 서문이 있는데 첫 번째는 서(序)라는 제목으로 방철원(方哲源)의 글이 실려 있으며 두 번째는 ‘간편조선요리제법의 서문’이라 하여 저자 본인이 작성한 서문이 실려 있다. 방철원은 서(序)에서 이 책을 “문화의 방향을 바로잡기” 위해, 그리고 “민중생활의 개량”을 위해 출간하였다고 하였으며 저자인 이석만은 서문에서 ‘조선에도 요리법이 없었던
  • 갈비는 가축의 가슴부분을 감싸고 있는 뼈와 살을 통칭하는 용어이다. 한자어로는 牛肋(우륵), 牛脇(우협), 曷非(갈비)라고 한다.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의 『아언각비(雅言覺非)』에는 “牛脇曰曷非(우협왈갈비)” 우협 즉, ‘소의 옆구리 부위’가 ‘갈비’라고 하고 있다. 우리말로는 ‘가리’라고 부르기도 하였으나 현재의 표준어 규정은 갈비만을 표준어로 인정하고 있다. 소, 돼지, 닭, 양 등의 가축의 종류에 갈비라는 용어를 붙여 음식의 용어로 사용한다. 음식
  • 갈비찜은 소나 돼지의 갈비 부위를 토막 쳐 채소와 함께 끓여 조린 것을 뜻한다. 갈비찜이라고 하면 주로 소갈비찜을 뜻하며 돼지갈비로 만들었을 경우 별도로 돼지갈비찜이라고 부른다. 조선시대에는 갈비의 옛말인 ‘가리’라는 용어를 사용해 가리찜이라고 불렀으며 근대 이후에는 가리찜과 갈비찜을 혼용하다가 현재는 갈비찜을 단독 표준어로 하고 있다. 한자어로는 乫非蒸(갈비증)이라고 한다. 『정조실록』에는 정조 19년(1795) 6월 18일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惠慶宮 洪氏
  • 갈비탕은 소의 갈비를 토막 내어 끓인 국물음식이다. 고기가 흐물흐물해져서 살이 붙어 있던 뼈가 쏙 빠질 정도로 푹 끓인다. ‘乫伊湯(갈이탕)’, ‘加里湯(가리탕), ’乫飛湯(갈비탕)‘이라 했다. 1957년에 출간한 『이조궁정요리통고(李朝宮中料理通攷)』를 보면, 소갈비를 5~6cm길이로 잘라 무를 함께 넣고 끓이다가 연하게 삶아지면 간장 양념을 넣어 간이 베이도록 주물러 갈비 끓인 국물에 다시 끓여 계란지단으로 고명한다. 갈비탕은 일찍이 외식업의 한식메뉴로 자리잡았다.
  • 갈비를 주재료로 이용한 음식 중 대표 음식은 갈비탕과 갈비찜이다. 갈비찜[乫飛蒸]의 경우 1795년(정조 19) 혜경궁의 상차림에도 올랐다. 그러나 갈비탕은 1800년대 말 이후 설행된 진찬 진연에 등장한다. 1919년 고종(高宗: 재위 1863-1907)의 혼전(魂殿)인 효덕전(孝德殿)에서 올린 아침 저녁 상식(上食)과 1912년 고종의 후궁이자 영친왕을 낳은 순헌황귀비 엄씨(純獻皇貴妃 嚴氏: 1854-1911)의 주다례에도 갈비탕이 올랐다. 갈비탕은 갈비를 토막내어 끓인 탕
  • 여름과 가을이 제철인 갈치는 은백색의 긴 칼 모양으로 생겼다 하여 강원도, 경상남도, 전라남도, 충청북도와 같은 지역에서는 ‘칼치’라고도 부르는 바닷물고기이다. 조선시대에는 한자로 ‘刀魚’(도어), ‘劍魚’(검어), ‘帶魚’(대어), ‘裙帶魚’(군대어), ‘鱭魚’(제어), ‘葛魚’(갈어)로 쓰기도 하고, 발음 그대로 ‘葛峙’(갈치), ‘乫雉’(갈치), ‘葛雉’(갈치), ‘葛侈’(갈치), ‘葛致’(갈치)로도 표기하였다. 또한 갈치의 새끼를 가리켜 전남지역에서는 ‘풀치’라고 부
  • 갈치자반은 ‘자반갈치’라고도 하며, 깨끗이 다듬은 갈치를 소금에 절여두었다가 필요할 때마다 꺼내 조리해 먹을 수 있도록 저장한 것이다. 자반갈치를 만드는 법은 방신영(方信榮: 1890-1977)의 『우리나라 음식 만드는 법』(1954)에 자세하다. 먼저 갈치 대가리를 자르고, 지느러미, 내장, 비늘을 제거한 후 알맞게 토막 쳐서 항아리에 소금과 함께 켜켜이 담아두면 1년 내내 반찬으로 삼을 수 있는데, 절인 지 2-3일이 지난 뒤 몇 토막을 꺼내 햇볕에 말렸다가 구워 먹어도 좋
  • 갈판과 갈돌은 나무열매나 곡물의 껍질을 벗기고 가루로 만드는 데 사용된 원시적 맷돌의 하나로 한 쌍을 이룬다. 신석기시대에는 주로 도토리 같은 야생 견과류를 부수어 가루로 만드는 데 사용되다가 청동기시대 농경이 본격화되면서 곡물의 가공에도 이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초기철기시대에 이르러 거의 자취를 감추는데 이는 새롭게 등장한 절구와 시루의 사용이 증가하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림의 갈판과 갈돌은 평안남도 대동군 대동강변의 청동기 유적에서 출토되었다. 갈판은
  • 감은 감나무의 열매이다. 유희(柳僖: 1773-1837)는 『물명고(物名攷)』에서 감의 한자는 ‘시(柹)’라고 했다. 반시는 모양이 편편하고 넓은 것, 조홍(早紅)은 음력 6월에 익는 작은 것, 홍시(紅柹)는 아직 익지 않았을 때 따서 따뜻한 곳에 두어 절로 붉게 익힌 것, 건시(乾柹)는 곶감, 백시(白柹)와 황시(黃柹)는 볕에 말린 것, 오시(烏柹)는 불에 말린 것, 준시(蹲柹)는 건시를 꼬챙이에 꿰지 않고 눌려서 편편하게 만든 것인데 다른 말로 시병(柹餠)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