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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귤(柑橘)은 감귤류 나무의 열매를 뜻한다. 조선시대에는 오직 제주도에서만 생산되었으므로, 조정에서는 이를 매우 귀하게 여겨 생산량의 대부분을 공물로 바치게 했다. 그리고 감귤 생산량을 늘리고자 감귤 재배지를 확장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1412년(태종 12년) 태종은 상림원별감(上林園別監) 김용(金用)을 제주에 파견하여 감귤 수백 주를 순천 등의 전라도 바닷가 고을에 옮겨 심게 하였으나, 끝내 열매가 맺지 않아 실패하였다(『태종실록(太宗實錄)』 태종 12년 11월 21일
  • 선조 연간에 어사(御使) 자격으로 제주에 파견되었던 김상헌(金尙憲, 1570-1652)은 제주와 제주민의 실정을 소상히 파악하고자 힘썼고, 그 자세한 내용을 『남사록(南槎錄)』이라는 책에 기록하였다. 이 책에서 김상헌은 “군역이나 전복을 따는 역 외에도 제주 사람들은 귤을 재배하고 진상하는 역, 뱃사람의 역, 말을 기르는 역 등 수도 없이 많은 고역에 시달렸다”고 적었다. 또한 “해마다 7, 8월이면 목사는 촌가의 귤나무를 순시하며 낱낱이 장부에 적어두었다가, 감귤이 익을 때면
  • 감귤(柑橘)은 귀한 과실이었기 때문에 상하지 않게 오래 보관하는 것이 중요했다. 『박해통고』에는 감귤을 보관하는 법 세 가지가 기록되어 있다. 이에 의하면 첫째, 감귤을 가지와 꼭지 채로 따서 가지를 무 위에 꽂아서 종이로 감싸 따뜻한 곳에 보관하면 봄철이 되어도 상하지 않는다. 둘째, 감귤을 마른 솔잎으로 한 층 한 층 덮어 술 냄새가 나지 않는 곳에 보관하면 썩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녹두 속에 보관하면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쌀과 가까운
  • 감로도(甘露圖)는 중생들에게 감로(甘露, 단 이슬)와 같은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을 베풀어 해탈시킨다는 의도로 그려진 불화로 감로왕도(甘露王圖) 감로탱(甘露幀) 감로탱화라고도 한다. 부처의 수제자인 목련존자(目連尊者)가 아귀도에서 먹지 못하는 고통에 빠진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부처에게 그 방법을 묻고 해답을 듣는 내용이다. 조선 중기 이래 사찰에서 의식을 지낼 때면 감로도를 그려 걸어놓고 재를 지내곤 하였다. 감로도의 구조는 상단에는 극락의 아미타불 일행과 칠여래(七如
  • <감모여재도(感慕如在圖)>는 조상의 신주를 모시는 사당(祠堂)과 위패를 그린 그림이다. 감모여재도 중에는 사당과 위패 앞에 제사상을 차린 모습을 그린 경우가 있다. 이 그림은 화폭의 중심에 사당이 그려지고, 좌우로 휘장이 걷힌 모습이다. 위아래로 연꽃이 장식된 내부 공간에 병풍이 배치되었는데, 병풍의 가운데 부분은 지방을 붙일 수 있도록 빈 공간이 남겨져 있다. 병풍 앞에는 제사상이 차려져 있는데, 향합, 향로, 촛대, 병(甁), 석류, 포도 등이 차려진 제사상이
  • 감선(減膳)이란 왕이 천재지변(天災地變)이 생겼거나 왕실의 궁, 능원 등에 화재나 훼손이 발생하였을 때, 특별한 애도(哀悼)를 표시하고자 할 때 자신의 밥상에 오르는 음식의 가짓수를 일시적으로 줄이는 일을 말한다. 이미 삼국시대에도 실시되었던 감선은 조선시대의 왕들에게는 아주 익숙한 일이었다. 감선을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였는데, 가장 주된 이유는 가뭄이었다. 대표적으로 태종(太宗: 재위 1400-1418)은 가뭄 때문에 감선을 하고 약주(藥酒)도 그만두고 죄수까지 풀어주
  • 감자는 가짓과에 속하는 다년생 초본식물로서 감자의 원산지는 남아메리카 안데스산맥 일대이고 감자를 한자어로는 북저(北藷), 북감(北甘), 토감저(土甘藷), 북감저(北甘藷), 마령서(馬鈴薯), 토두(土豆) 등으로 표기한다. 감자는 감저(甘藷)에서 변환된 단어인데 감저는 조선 후기 각종 문헌에서 고구마를 가리키는 단어였다. 식민지시기에 들어서 손진태(孫晋泰: 1900-?)는 「감저전파고」에서 고구마와 감자가 한반도에 어떻게 전파되었는지를 다루면서 명칭에 대한 문제 역시 다루었다.
  • 가을이 되었다. 칠성문 밖 빈민굴의 여인들은 가을이 되면 칠성문 밖에 있는 중국인의 채마밭에 감자(고구마)며 배추를 도적질하러 밤에 바구니를 가지고 간다. 복녀도 감자깨나 잘 도적질하여 왔다. 어떤 날 밤, 그는 감자를 한 바구니 잘 도적질하여 가지고, 이젠 돌아오려고 일어설 때에, 그의 뒤에 시꺼먼 그림자가 서서 그를 꽉 붙들었다. 보니, 그것은 그 밭의 소작인인 중국인 왕서방이었었다. 복녀는 말도 못 하고 멀진멀진 발아래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우리집에 가.” 왕서방은 이렇게
  • 『조선요리제법』의 저자 방신영이 <월간여성> 1940년 1월호에 기고한 「한 끼에 십전으로 되는 반찬」에는 감자로 만든 요리가 등장한다. 1940년이란 시기는 이미 중일전쟁이 발발한 후 일본정부가 총동원체제를 구축하고 실행하고 있던 시기로 방신영의 요리법 앞뒤로 박영숙의 「이세국민의 전시교육」이라는 글과 노좌근의 「가정에서 가두로!」라는 여성을 적극적으로 전쟁에 협력시키기 위한 글들이 기고되어 있다. 방신영은 이 글에서 당시 물가가 상승하고 모든 물건이 귀해
  • 1463년 1월 24일 세조는 경복궁 사정전에서 2품 이상의 공신들을 신하들과 주연(酒筵)을 베풀면서 시를 지으면서 즐기고 있었다. 주연이 진행되고 있던 도중 세조가 자신이 왕이 되는데 큰 공을 세웠던 권남(權擥: 1416-1465)에게 자신이 최근 몸이 좋지 못할 때 감주(甘酒)를 맛있게 먹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세조는 몸이 좋지 않을 때에도 신하들과 더불어 이야기하기를 원한다고 하면서 이와 관련한 시 한수를 권남에게 지어보라고 권했다. 이에 권남은 즉각 시 한수를 지어 세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