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너뛰기링크

한국음식문화 한식문화사전

한국음식문화

메뉴 열기, 닫기
한국음식문화
검색 열기,닫기

한식문화사전

검색어 입력

한식문화사전

한식문화사전

초성검색

원하시는 초성을 선택해 주세요

"전체"  총 1081개

  • 1534년 9월 3일 여러 신하들이 홍문관, 사간원, 승정원의 벼슬을 받았다. 사림(士林)의 힘이 강해지던 당시 이들이 받은 벼슬들은 청반(淸班)이라 불리며 직책은 낮지만 훗날 높은 지위에 오를 수 있는 중요한 벼슬자리였다. 청반의 자리를 받은 사람들 중 승정원 주서에 오른 이팽수(李彭壽, 1520~1592)란 인물이 있었다. 세간에는 이팽수가 청반의 지위에 오른 이유를 개고기 때문이라 했다. 성종(成宗)의 열두 번째 아들인 무산군 이종(李悰: 1490-1525)이 이팽수의
  • 장계향(張桂香: 1598-1680)이 쓴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에는 개장(개순대), 개장꼬지 누르미, 개장국 누르미, 개장찜(내장 찜), 누렁개 삶는 법, 개장 고는 법 등 총 여섯 가지 종류의 개고기 조리법이 나온다. 개장은 살짝 삶은 개고기에 후추, 천초, 생강, 기름, 간장으로 양념을 하여 깨끗이 씻은 개 창자 속에 넣어 찐 음식으로 식초와 겨자를 곁들여 먹는다. 누르미라는 음식은 전분을 풀어 넣어 걸죽하게 만든 음식을 뜻한다. 개장꼬지 누르미는 살짝 삶은
  • 개화기 조선을 방문한 외국인들은 개고기를 먹는 조선의 풍습에 대해 관심을 가졌으며 이는 다양한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외국인의 여행기에 따르면 이 시기 조선인들은 잔치 때 개고기를 먹었다. 또, 시장에서 개고기를 파는 상점을 볼 수 있었으며 익힌 개고기를 가지고 다니며 파는 행상도 있었다고 묘사하였다. 그러나 개고기의 조리법이나 개고기 음식의 종류를 다양하게 묘사하지는 않았으며 개고기 먹는 풍습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였다. 조선인의 의식주생활에 대해 비교적 자세하게 묘
  • 보내주신 편지에서 짐승의 고기는 전혀 먹지 못한다고 하셨는데, 이것이 어찌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도(道)라고 하겠습니까? 섬 안에 산 개[山犬]가 천 마리 백 마리뿐이 아닐 텐데, 제가 그곳에 있었다면 5일에 한 마리씩 삶는 것을 결코 빠뜨리지 않겠습니다.…5일마다 한 마리를 삶으면 하루 이틀쯤이야 생선찌개를 먹는다 해도 어찌 기운을 잃는 데까지야 이르겠습니까? 1년 365일에 52마리의 개를 삶으면 충분히 고기를 계속 먹을 수가 있습니다. 하늘이 흑산도를 형님의 식읍지로 만들
  • 보잘 것 없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개떡 같다’라는 표현을 쓴다. 개떡은 지금처럼 멥쌀가루가 아닌 밀가루를 곱게 채치고 남은 찌꺼기인 밀기울이나 보릿겨 또는 메밀겨, 좁쌀 등을 물로 반죽해서 둥글넓적하게 대충 만들어서 밥 뜸들일 때 아무렇게나 올려서 찐 떡이다. 1930년대 신문에 연재된 소설 속에서 개떡은 햇곡식이 나오긴 전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만들어 점심 끼니를 때우거나 간식이었다. 그 떡의 모습은 흡사 흙덩이와 같아 형편없을 뿐만 아니라 그 맛도 별로 없었다.
  • 1929년 12월 1일자 <별건곤> 잡지에 「진품 명품 천하명식 팔도명식물예찬(珍品 名品 天下名食 八道名食物禮讚)」이라는 재미난 기사가 실렸다. 평양 개성 전주 진주 등 조선팔도의 유명한 음식을 소개한 글인데, 이 중 진학포(秦學圃)라는 필명을 쓰는 필자는 개성지방의 명식물로 편수(片水)를 꼽았다. 편수는 개성지역 사람들이 주로 여름철에 즐겨 먹던 만두로, 그 모양이 마치 물 위에 뜬 조각 같다 하여 편수라는 낭만적인 이름으로 불렸다. 편수는 만두와 비슷하지만, 생긴
  • 개장국은 개의 갈비, 내장, 살을 푹 고아 간장, 기름, 참깨, 후추, 천초로 양념하여 끓인 국으로, 한자어로 구장(狗醬)이라고도 한다. 보신탕, 영양탕, 사철탕과 같은 명칭도 모두 개장국을 일컫는 다른 이름이다. 조선시대에는 단백질 공급원으로 개고기가 많이 식용되었다. 1600년대에 장계향(張桂香: 1598-1680)이 쓴 『음식디미방(閨壼是議方)』에는 개장국을 비롯하여 개장국 누르미, 개장고지 누르미, 개장찜, 누런 개 삶는 법, 개장 고는 법 등과 같이 개고기를 이용한 각종
  • 개피떡은 절편 덩어리를 얇게 밀어 팥소를 넣고 접은 다음 반달 모양으로 찍어 공기가 들어가게 한 떡이다. 반달 모양으로 만들기 위해 둥근 공기 그릇 같은 걸로 눌러 찍을 때 바람이 들어가 흔히 ‘바람떡’이라고도 한다. 개피떡이 문헌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800년대 중후기이다. 『음식방문』(1800년대 중엽)에서 개피떡은 흰 떡 치고 푸른 것은 쑥을 넣어 절편 쳐서 만들되 거피팥 고물하여 소로 만들어 넣어 탕기 뚜껑 같은 것으로 떠내라고 했다. 지금의 개피떡과 유사하다.
  • 1458년 6월 26일 세조는 임금으로서의 검소함을 드러내기 위해 도승지와 우승지에게 임금의 밥상에 너무 곱고 흰 쌀을 올릴 필요가 없다고 명령했다. 그러면서 나라에서 지내는 제사 이외에는 세갱미(細粳米)를 쓰지 말고 중미(中米)를 쓰도록 하게 하였다. 이에 도승지가 중미(中米)는 너무 거칠어서 임금님께 올리기 마땅하지 않다고 하였으나 세조는 갱미(粳米)를 쓰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기사에서 언급된 세갱미란 곱게 여러 차례 찧어 하얗게 된 멥쌀을 지칭하고
  • 1874년(고종 11) 2월 8일 묘시(卯時)에 명성황후 민씨(明成皇后 閔氏: 1851-1895)는 훗날 순종(純宗: 재위 1907-1910)이 될 원자(元子)를 낳았다. 순종이 태어난 지 초칠일(7일), 이칠일(14일), 삼칠일(21일)이 되는 날에 각 전(殿)과 주변 친지들, 손님, 약방(藥房)과 승후관(承候官, 국왕의 기거와 안부를 묻던 관직), 산실청(産室廳), 의관, 의녀 등에게 갱반(羹飯)이라는 상차림을 제공하였다. 갱반은 국과 밥을 말한다. 초칠일, 즉 2월 14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