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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징어순대처럼 소의 오줌보인 우뇨통(牛溺通)에 여러 가지 고기와 버섯류를 다져 넣어서 찐 음식이다. 1892년(고종 29) 왕실 연회에 올랐다. 외국인들이 초대된 1900년대 이후 연회에서는 건낭병(建囊餠)이 차려졌으나 주재료인 우뇨통을 재료목록에 포함하지 않았고, 또는 다른 음식으로 대체되기도 했다. 1892년(고종 29)에 고종의 나이 41세, 즉위 30주년을 기념하는 연회에서 고종이 받은 음식상 중에는 소의 오줌보를 이용한 신기한 음식 하나가 등장한다. 다섯 번째 미수상에
  • 건진국수는 면을 미리 삶아 익힌 다음 찬물에 담갔다가 건져내어 국물을 붓고 고명을 얹은 후 양념간장으로 간을 맞추어 먹는 국수다. 즉 “건져냈다”는 말에서 유래한 건진국수는 기일제사 때 국물 없이 주발에 담아 제상에 올렸다. 경북 안동지역의 건진국수는 밀가루에 콩가루를 섞어 면을 만든다는 점이 특징적인데, 콩가루를 섞은 건진국수는 콩 특유의 구수한 맛을 낸다. 밀가루에 콩가루를 섞어 되직하게 반죽하여 암반 위에 두고, 반죽이 최대한 얇게 펴지면서 큰 원형이 될 때까지 홍두깨
  • 게는 갑각류의 총칭이다. 유희(柳僖, 1773-1837)는 『물명고(物名攷)』에서 게의 한자를 ‘해(蟹)’라고 했다. 다리가 짧고 어린 게를 궤(跪) 방해(螃蟹) 횡행개사(橫行介士) 무장공자(無腸公子) 등으로 불린다고 적었다. 그는 꽃게와 가재도 게에 포함시켰다. 정약전(丁若銓: 1758-1816)은 『자산어보(玆山魚譜)』에서 민꽃게를 한자로 무해(舞蟹)라고 적고 속명이 벌덕궤(伐德跪)라고 했다. 정약전은 마치 춤을 추듯이 집게발을 펼치고 일어서기 때문에 ‘무해’라고 이름
  • 『이조궁정요리통고(李朝宮廷料理通攷)』에는 ‘게감정’이라는 음식 이름이 나온다. 우선 소고기와 두부에 갖은 양념을 혼합하여 게장을 긁어낸 게딱지 속에 채운다. 그 위에 게장을 바르고 달걀을 칠한 뒤 된장과 고추장으로 간한 장국에 넣어 끓인다. 이때 장국 육수는 게 다리와 몸통 등으로 끓이며 고명은 달걀지단으로 한다. 『이조궁정요리통고』에는 소를 채운 게딱지를 그대로 장국물에 넣지만 최근의 요리책에는 소를 넣은 게딱지에 달걀 물을 묻혀 지져낸 뒤 넣으라고 되어있다. 또한 게딱지를
  • 게장은 장에 절인 게를 뜻한다. 조선시대에는 한글로는 게젓이라고 불렀으며 한자어로는 蟹醬(해장) 혹은 蟹醢(해해)라고 하였다. 본래 게장은 암게의 딱지 안에 있는 노란색의 장, 즉 난소를 뜻하는 말이었으나 현대에는 간장에 절인 게나 양념에 무친 게를 뜻하는 말로 변화하였다. 간장게장은 1990년대 경 개발된 양념게장이라는 음식과 구분하기 위해 생겨난 용어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장에 절인 게를 뜻하는 게장의 의미와 맞는 음식은 간장게장이며 양념게장은 익히지 않은 게를 양념
  • 1724년 경종이 게장과 감을 먹고 병세가 더욱 악화되었다. 붕당이 격렬해지던 상황에서 정치적 주도세력을 교체하는 환국을 통해 왕권을 강화시키던 숙종을 이어 왕위에 오른 이는 장희빈의 아들인 경종이었다. 새로운 왕이 즉위하였지만 노론과 소론을 중심으로 한 정권다툼은 끓이지 않았다. 오히려 경종이 즉위한 이후 당시 정치적 주도권을 잡고 있던 노론과 그 주도권을 빼앗고자 하던 소론 사이의 다툼은 더욱 격화되었다. 그 과정 속에서 경종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훗날 영조가 되는 연
  • "초복(初伏), 중복(中伏), 말복(末伏)은 일 년 중 가장 무더운 때이다. 양기(陽氣, 더위)가 음기(陰氣, 서늘함)을 눌러 한밤중에도 더위가 식지 않으니, ‘음기가 양기에 눌려 엎드려 있다’고 하여 복(伏)이라 했다. 한 달 남짓 되는 이 삼복지간(三伏之間)에 사람들은 더위에 지쳐 대체로 입맛이 떨어지고, 몸의 기운도 약해지기 쉽다. 오죽하면, ‘삼복지간에는 입술에 붙은 밥알도 무겁다’라는 말이 있을까? 그래서 예로부터 삼복에는 더위에 지친 몸을 보(保)하기 위해 고
  • 『규합총서(閨閤叢書)』에서는 술과 식초, 소금, 간장으로 만드는 3가지 게젓 조리법이 나온다. 게젓은 게장의 다른 말이다. 간장으로 만드는 게젓은 식재료에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달인 간장을 붓고 다시 그 간장을 꺼내어 달여 붓는다는 점에서 현대의 간장게장과 조리법이 유사하다. 조리법을 살펴보면 우선 검은 간장과 소고기를 항아리에 담아 달인다. 씻어서 물기를 없앤 게를 항아리에 담고 달인 간장을 붓는다. 이틀 후 다시 간장을 쏟아 달여 식혀서 붓는다. 씨 뺀 천초도 넣는다. 이
  • 둥근 배 먼저 가르고 살진 다리를 잘라서 손수 후초와 소금 치고 붉은 기름 둘러 찌니 솥 안에서 요란한 소리에 향긋한 안개 일기에 급히 여종 불러 이웃에 막걸리 얻어오게 하였네. 團臍先劈折肥螯 手進椒鹽下紫膏 笙泣鼎中香霧起 急呼村婢問隣醪 *정운희, 「게탕[蟹湯]을 먹으며」 정운희(丁運煕: 1566-1635)는 자가 지회(之會), 호는 고주(孤舟), 동고(東臯), 학고(鶴皐) 등을 사용했으며 본관은 영광(靈光)이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의 휘하에서 전공을 세운 인물이며 문집 『고주집(
  • 『경도잡지(京都雜志)』는 조선 후기에 출간된 세시풍속서로, 유득공(柳得恭: 1748-1807)이 지었다. 책을 완성한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내용으로 볼 때 정조 연간에 쓰인 것으로 추정된다. 김매순(金邁淳)의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 홍석모(洪錫謨, 1781-1857)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와 더불어 대표적인 조선 후기의 세시풍속서로 손꼽히며, 필사본으로 전하던 것을 1911년 최남선(崔南善: 1890-1957)이 주도하던 조선광문회(朝鮮光文會)에서 『동국세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