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너뛰기링크

한국음식문화 한식문화사전

한국음식문화

메뉴 열기, 닫기
한국음식문화
검색 열기,닫기

한식문화사전

검색어 입력

한식문화사전

한식문화사전

초성검색

원하시는 초성을 선택해 주세요

"전체"  총 1081개

  • 괴기국수, 돼지국수, 돗괴기국수 라고도 불린다. 행사나 잔치에서 먹는 제주도 지방의 향토음식인데 돼지의 뼈를 우려 낸 뽀얀 육수가 특징이다. 제주도에서는 결혼식이나 장례식에 온 손님을 대접할 때 돼지를 잡는 관습이 있었고 이에 따라 혼례, 상례 때에 내는 음식이었다. 그러나 혼례에서 내는 경우는 거의 사라졌고 현재는 서귀포시 지역에서 상례가 있을 때에만 대접하고 있다. 국물을 낼 때에는 돼지고기와 함께 크게 썬 양마, 마늘, 생강, 된장을 넣고 푹 삶는다. 삶은 돼지
  • 간혹 맛이 있다고 느껴지는 것이 있으면 “아아 이 동김친 퍽 맛이 있는데요. 이렇게 담그자면 무슨 묘방이 있겠죠?” “이 고동찜엔 특별한 양념이 들어 있는 모양인데 배워 가지고 가야 되겠는데요” 하며 말을 섞지만 그 말들이 도무지 수다스럽지가 않고 식사 시간의 단란함을 북돋우는 반주가 되기도 했다. 이 글은 1968년에서 1970년까지 <월간 중앙>에 연재된 이병주(李炳注: 1921-1992)의 장편소설 『관부연락선』에 나온다. 이병주는 엄청난 다작의 소설가로 많
  • "국화과에 속하는 두해살이풀로서 산, 들판, 논둑, 밭둑 등을 가리지 않고 잘 자라며 뿌리가 하나로 가늘고 길다. 성장 초기에는 전체를 캐서 무침으로 먹고, 성장 후에는 뿌리만 채취해서 김치를 담가 먹기도 하는 등 식재료로 유용하다. 고들빼기는 특유의 쌉쌀한 맛이 일품인데 간혹 비슷한 모양과 맛의 씀바귀와 혼동하는 사람들도 있다. 특히 구황 시에 많이 먹는 나물 가운데 하나이지만 최근에는 전라도지역 겨울 김장김치로도 각광받고 있다. 고들빼기는 무침, 김치, 장아찌
  • 고들빼기김치는 소금물에 절여 쓴 맛을 뺀 고들빼기에 멸치젓국에 고춧가루ㆍ다진 마늘ㆍ다진 생강ㆍ다진 고추 등의 양념을 넣어 버무린 전라도식 김장김치이다. 고들빼기김치는 고들빼기장아찌와 마찬가지로 전라도 지역의 향토음식이다. 전라도에서는 과거 김장철에 고들빼기김치도 함께 담가 음력설까지 먹었다. 야산의 고들빼기를 미리 캐 뒀다가 김치를 담갔는데, 최근에는 고들빼기를 재배하면서 계절에 관계없이 담가 먹고 다른 지역으로 판매도 한다. 고들빼기 뿌리가 굵고 길며 잎이 연한 것이 김치
  • 고들빼기장아찌는 고들빼기를 소금에 절여 쓴맛을 없앤 다음 간장 또는 고추장에 절인 음식이며, 한 번 담가 두면 사계절 동안 먹을 수 있다. 대게 장아찌류는 채소를 소금에 절이거나 절이지 않고서도 간장이나 고추장 등에 박아 두었다가 삭으면 먹는다. 고들빼기장아찌도 비슷한데 대체로 소금에 절여서 고추장에 박아 두었다가 먹는다. 2008년 농촌진흥원 농업과학기술원에서 발행한 전라북도 에는 전라북도 전통향토음식을 발굴 조사하여 기록하였는데 고들빼기장아찌에 관한 내용도 상세히 쓰여
  • 고등어과에 속하는 등푸른 생선으로 시대와 지역을 구분하지 않고 남녀노소 모두 즐겨 먹는 부식 재료이다. 고등어는 일상적으로도 자주 먹었지만 경북북부권에서는 제사의 제물로도 쓰였다. 고등어를 활용한 음식으로는 고등어찌개, 고등어찜, 고등어구이, 고등어내장젓갈 등이 있다. 조선시대의 여러 문헌을 보면 고등어의 이름은 고도어(古島魚, 古刀魚, 古道魚), 고등어(皐登魚, 古等魚), 고동어(古同魚, 古洞魚, 高同魚), 고망어(古亡魚), 고두막(高斗邈), 등필이어(登必伊魚), 고돌이어
  • 서유구(徐有榘: 1764-1845)가 1835년경 쓴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는 고려율고(高麗栗餻)라는 음식이 등장한다. 서유구는 중국 명나라 시대의 문장가 고렴(高濂: ?-?)이 쓴 수필집 『준생팔전(遵生八牋)』에서 인용하였다고 밝히고 있는데, 이에 앞서 원나라 때 편찬된 『거가필용사류전집(居家必用事類全集)』에도 고려율고가 등장한다. 고려율고는 다른 말로 그냥 율고(栗糕)라고도 하며, 밤떡, 밤설기떡이라고도 한다. 저자는 조리법 앞머리에는 ‘이 방법은 우리나라에서 중국으로
  • 고사리는 산에서 자라는 다년생 양치류 식물로, 한자로는 ‘蕨菜’(궐채) 또는 발음 그대로 ‘古沙里’(고사리)라고 쓴다. 고사리는 봄철에 새로 돋은 연한 줄기를 꺾어서 식용하는데, 시기가 늦어지면 줄기가 억세져서 먹을 수 없다. 이 때문에 무슨 일이든 때가 있으며 그때를 놓치지 말고 해야 한다는 의미를 전할 때 “고사리도 꺾을 때 꺾는다”는 속담을 쓴다. 봄철에 나는 생 고사리는 조선시대에는 매년 3월 종묘에 천신(薦新)하는 음식물이었다.(『종묘의궤(宗廟儀軌)』 제4책) 이에
  • 뒷뫼에 고사리 뜯고 앞내에 고기 낚아 솔제자포약손(率諸子抱弱孫)하고 일감지미(一甘旨味)를 한데 앉아 나눠 먹고 담소자약(談笑自若)하여 만실환희(滿室歡喜)하고 우락(憂樂)없이 늙었으니 아마도 환해영욕(宦海榮辱)을 나는 아니 구(求)하노라(「언롱」) 이 작품은 조선 후기에 나타난 작자 미상의 시조이다. 이 시조는 가곡(歌曲) 언롱(言弄)의 사설, 즉 가사로도 사용되었다. 가곡이란 관현악 반주에 맞추어 시조시를 노래하는 전통 성악곡을 말하는 것으로 정해진 곡조가 연이어 있는 연속
  • 중국 고대의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는 조선에서 굳은 절개를 지닌 인물로 존경받았다. 두 사람은 형제로서 고죽국(孤竹國) 군주의 아들이었다. 그런데 첫째인 백이와 셋째인 숙제가 서로 군주의 자리를 물려받지 않겠다며 자기 나라를 떠났다. 둘은 주나라 문왕(文王)을 찾아갔지만, 이미 문왕은 죽고 아들인 무왕(武王)이 즉위한 상태였다. 무왕은 아버지 문왕의 상중(喪中)에 은나라를 치러 나섰고, 백이와 숙제는 상중의 전쟁이 효(孝)와 인(仁)에 맞지 않는다며 앞을 가로막았다. 두 사람